
한줄평
어떻게 살 것인가?
책 정보
레프 톨스토이 저/ 연진희 역/ 민음사/ 2025년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릴 때에는 부모와 사회가 정해준 기준에 맞춰서 자란다. 집에서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학교에서는 높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삶의 지향점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타인에 의해 정해진 기준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에 톨스토이의 생각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작은 잔물결을 일으킨다.
민음사에서 출판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에는 톨스토이의 단편이 6개가 묶여있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바보 이반
- 홀스토메르
-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 주인과 일꾼
- 항아리 알료샤
6개의 단편을 이어 읽다보면 단편에서 말하고자하는 내용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하느님이 대천사 미하일에게 3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보여준다. 젖먹이 쌍둥이 아이의 엄마를 하느님의 곁으로 데리고 간 후 남은 쌍둥이를 다른 사람이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인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라 설명한다.
하지만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바쁜 소시민에게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구두장이 시몬이 알몸인 미하일을 데리고 왔을 때, 시몬의 아내 마트료나는 시몬을 구박하며 화를 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욕심에 의해 방해받는다.
‘바보 이반’에서는 바보 이반과 형 세묜, 타라스가 등장한다. 이반은 가족에게 바보라 취급받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의심치 않고 내어준다.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베푼다. 그러나 바보 이반에게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이반이 세운 나라에는 단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다만 그의 왕국에는 한 가지 관습이 있다. 두 손에 굳은살이 있는 사람은 식사 자리에 낄 수 있고,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남들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한다.’ -p.97-
이반은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지만 가지지 않는 것을 통해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평소에 하던대로 일을 하며 하루하루 그저 잘 지내는 것에 만족하며 주변 사람과 잘 지냈다. 톨스토이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타인에 대한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홀스토메르’에서는 말의 시선으로 인간사회를 바라본다.
‘어떤 특정한 사물에 대해 한 사람만 ‘나의’라는 말을 하도록 정해진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약속된 이 놀이에서 가장 큰 수의 사물에 대해 ‘나의’라고 말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p135-
홀스토메르는 날때부터 큰 얼룩무늬가 있어서 차별을 받는다. 그러던 중 세르홉스키 공작을 만난 홀스토메르는 경주마로써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세르홉스키 공작은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여과없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마저 자기 여자라고 부르며 소유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달아났고 그것을 안 공작은 홀스토메르를 혹사시키며 뒤쫓았다. 그 이후로 홀스토메르는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었던 공작은 말년에 추한 모습으로 죽었고, 이와 반대로 홀스토메르는 아기 늑대에게는 자신의 살을, 농부에게는 자신의 정강이뼈를, 다른이에게는 자신의 가죽을 내어주며 무소유의 행복을 보여준다. 결국 소유로부터 욕심이 자라나기 때문에 무소유를 통해 욕심을 버리고 행복을 찾는 모습이 아름다운 삶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이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서도 이어진다. 결국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통해 무소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주인과 일꾼’에서는 다시금 타인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인은 일꾼과 함께 눈보라 치는 곳을 뚫고 다른 마을로 가야한다. 눈보라 속에 길을 잃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주인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 혼자라도 살기 위해 말을 타고 가려다 말에서 떨어지고 혼자 남았을 때, 그 순간 주인은 죽음 앞에 자신이 가진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곤 일꾼이 있는 곳으로 다시 옮겨가 추위에 떨어 죽어가는 일꾼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 주인은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기쁨과 감동에 휩싸이며 일꾼은 살리고 자신은 죽었다.
‘항아리 알료샤’에 등장하는 알료샤는 바보 이반의 모습과 비슷하다.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주인이 시키는대로 묵묵히 일만 할 뿐이다. 알료샤는 반복된 무료한 일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어떤 용무 없이도 돌봐 주고 애정을 쏟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알료샤 자신이 다름 아닌 그런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놀라움 속에서 알게 된 것이다. (중략)
그가 죽을 먹을 때면 소매를 걷어 올린 한 팔에 턱을 받치고서 그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고 그도 웃음을 터뜨린다. ‘ -p.289~290-
알료샤와 우스치니야가 같이 웃는 모습에 책을 읽는 나도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톨스토이 단편집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이 나와있다.
자신이 가진 것과 가지려는 것에 탐욕을 부리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며,
사랑하는 이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며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
우리도 이러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