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한줄평
차이와 차별 사이에서


책 정보
하퍼 리 저/ 김욱동 역/ 열린책들/ 2015년

차이는 언제나 존재했다. 남자와 여자, 청년과 노인, 부자와 서민, 지배자와 피지배자. 하지만, 시대가 갈수록 차이에 따른 차별이 나아지기는 커녕 점차 차이를 세분화하여 차별을 확대하는 시대이다. 한 예로, 영포티 논란이다. 예전에는 청년과 노인 이렇게 나눠졌다면, 지금 청년 세대 안에서도 20대와 40대로 나뉘어 서로를 비난한다. 1930년 미국 남부에서 살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지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소설에서 나온 차별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집 밖에서 나올 수 없는 부 래들리(아서 래들리) 이야기. 두번째로는 인종차별로 유죄가 선고된 톰 로빈슨 이야기. 각각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보자면, 부 래들리는 모종의 이유로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은둔자이다. 이런 부 래들리를 두고 아이들은 근거 없이 부 래들리를 괴물처럼 상상한다. 동물을 날 것으로 먹고 얼굴에 흉터가 있으며 이빨은 누렇게 썩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적 편견을 쌓아간다. 그러고는 부 래들리를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위험한 장난을 치다 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듣는다.
톰 로빈슨은 백인 여자(마옐라 이웰)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입건되었다. 하지만 톰 로빈슨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였다. 스카웃의 아버지는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들이 메이컴의 고질병(집단적 편견)에 걸리지 않고 시기를 견뎌내기를 바라고 있다. 법정에서 아버지는 톰 로빈슨이 백인 여자(마옐라 이웰)를 강간 한 것이 아니고 실상은 여자가 톰 로빈슨을 유혹하려던 걸 여자의 아버지(봅 이웰)가 보고 폭행을 한 것이고, 톰 로빈슨은 그 자리에서 달아난 것 뿐이라는 진실을 밝혔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진실과는 관계없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톰 로빈슨은 상고심이 남아 있지만 더 이상 백인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 탈옥을 시도하다 교도관이 쏜 총에 죽는다.

두 사건을 겪으며 주인공인 스카웃은 앵무새를 죽이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부 래들리와 톰 로비슨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


소설 말미에 스카웃은 아버지가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스카웃은 부 래들리 집 앞에서 메이컴 마을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아래 문장이 등장한다.

물론 우리는 남이 서 있는 그곳에 완벽히 똑같은 위치에 서 있을 순 없다. 남자가 여자로 바뀌거나 여자가 남자로 바뀌기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나의 가족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생각할 순 있을 것이다.이런 것 처럼 남의 입장은 아니더라도 다른 위치에 서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5.18 민주화 운동, 젠더 갈등, 중국인 혐오, 성소수자 차별과 같은 문제들이 우리나라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럴 때마다 무지한 정치인들은 이런 소재를 자신의 정치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현명한 시민이라면 이런 이슈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무지한자의 선동에 동조하기 전에 먼저 다른 곳에서 서서 천천히 바라보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

차이와 차별 사이에서 살아가는 요즘. 무엇하나 쓰고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쓴 글 한 줄이 말 한마디가 나에게 차별이 덧씌워질까봐 조심스럽다. 더불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민감한 차이를 다루는 내용이 있을 때 피하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근거는 무엇인지, 나의 생각은 무엇인지 대화를 이어간다. 마치 소설 속 젬과 스카웃이 집안에만 있는 부 래들리를 밖으로 나오게 했던 시도를 했던 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