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




한줄평
시인과 나의 사유에서 오는 간극

책 정보
정현종, 문학판, 2015년

한국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든 첫 SF영화이고, CG의 수준이 헐리우드 영화 수준에 버금갈 정도라며 극찬한 ‘승리호’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그래픽은 꽤 디테일을 잘 살렸지만, 시나리오는 너무 진부해 나에게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나에게 궁금증을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극중 업동이가 릴케의 시집을 읽고 있는 장면이었다. 릴케?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기에 어떤 시인인지 궁금해 릴케 관련 시집을 읽어보았다. 

  내가 선택한 시집은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 이다. ‘정현종’ 시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교과서에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란 시가 실렸다고 한다. 기억은 안나지만 정현종 시인의 해석을 도움을 받아 릴케의 시를 읽어본다.

  정현종 시인은 릴케에 대해 서문에 이렇게 표현한다.

  여기서 정현종 시인이 볼 때 릴케는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탁월하다고 느낀 듯 하다. 그리고 릴케는 자신의 내면을 더 잘살피기 위해 ‘듣는 것’에 몰입했다.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 1편 중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침묵은 ‘듣기’ 위한 선행조건이다. 들으면서 우리는 생각한다. 다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도하고, 나의 내면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나의 생각이 정립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동한다. 

  릴케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가을날’이다. 하지만 릴케가 가을을 주제로 ‘가을날’만 시를 쓴 것은 아니다. 나는 여러 시중 특히 ‘가을’이란 시가 인상적이였다. 시의 전문을 소개하면,

  우리는 가을로 부터 받는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추수의 풍요로움, 떨어지는 낙엽이 있다. 릴케는 ‘가을날’에서는 풍요와 관련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면, ‘가을’에서는 떨어지는 낙엽으로 부터 죽음을 이야기한다. 릴케는 몸이 건강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컸을 듯 하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 또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내면의 고찰이 ‘가을’이란 시에서 드러난다. 떨어지는 것은 죽음을 상징한다. 모든 것은 죽는다. 심지어 무거운 지구마저도. 하지만 릴케는 죽는다는 것이 끝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시의 마지막에는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릴케의 의지가 보인다. 

  처음 릴케의 시를 읽었을 때는 막연함이 느껴진다. 사실 시를 평소에 잘 읽지 않았기에 어떻게 감상을 할지 막막했다. 몇몇 사람들은 시라는 것도 결국 예술이기에 그냥 편하게 본인이 생각하고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시를 읽을 때 아쉬움이 느껴진다. 나의 해석이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큰 흐름을 놓치거나 맥락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같은 예술인 미술 이야기를 해보자. 현대 미술작품을 보면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막연한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시리즈이다. 

몬드리안, 컴포지션 시리즈 중 하나

 그림은 보면 선과 색의 대비가 뚜렷하다. 하지만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서 어떤 다른 것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이번에는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이다. 

김창열, 물방울

 물방울을 정말 실제와 비슷하게 잘 그렸다는 생각만 든다. 역시 난 미술을 모르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작가들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는 온전히 감상하는 이의 몫이다. 그나마 미술을 우리의 감각중에 가장 뛰어난 시각(우리의 자극 중 80%이상 차지한다.)에 자극을 준다. 우리는 시각을 최대한 활용하여 작품에서 특징적인 요소를 찾아내며 감상하는 이의 의미부여를 한다. 

  하지만 시는 다르다. 우리의 시각은 하얀색 배경의 종이와 검은색 글의 색깔 대비만 찾아낼 뿐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시를 우리의 머릿속 사유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고 감상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시의 감상은 미술작품에 비해 더욱 어렵다.
 그 결과가 현실로도 보인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한다. 반면 도서관에 있는 시집코너에 가면 책장을 넘긴 흔적도 없는 새책들이 가득하다. 릴케의 시집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의 시인 뿐만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 시에 대해 해석도 해주고, 사람들에게 좋은 시도 소개해주고, 시집이 아니더라도 다른 문학 작품에서도 시를 인용하여 사람들이 시를 편안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