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화가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묻는다
책 정보
윤현희 저, 믹스커피, 2019년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지쳐 고된 몸을 침대에 눕힌 뒤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다. 두 질문의 답을 찾기도 전에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살아온 흔적이 어디에 남아 있을까?라는 이처럼 답이 없는 질문에 빠져들면 답을 찾기도 전에 잠이 든다.
그러다 문득 이중섭의 전시를 보며, 작가는 살아온 흔적이 그림에 남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 그림은 이중섭 화백이 담배를 감싸고 있는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그릴 당시 이중섭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가족을 일본에 있는 처가로 보낸 상황이였다. 이별의 기간이 길어지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커져가고 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그림을 그릴 도구마저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상황이였다. 담배를 감싼 은박지를 이용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였고, 이것이 이중섭의 은지화이다. 이 작은 은지화 작품 속에 이중섭의 살아온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중섭, 두아이, 1950년
어쩌면 우리는 미술이란 작품을 통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모임이 늘어간다. 직장에서의 회식,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 등 이런 모임에 참석할 때 우리는 직장에서 몇몇 사람만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지만, 감동은 없다. 하지만 개개인의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를 들을 땐 서로에게 솔직한 마음이 앞서며 인간적인 정이 느껴진다. 이처럼 우린 작가들이 살아온 인생을 작품으로 듣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
서론이 길었지만, ‘미술관에 간 심리학’은 화가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심리학을 전공했으니 당연히 전문적인 심리학 내용이 많이 등장할 듯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는 미술사를 전공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책 목차에는 심리학적 분류로 1장부터 5장까지 분류해 두었다. 각각의 장 안에는 4명의 화가에 대한 글이 적혀있다. 화가의 그림과 해석이 들어가고 화가가 살아온 인생을 심리적인 내용과 관련지어 서술하였다.
미술과 심리학의 콜라보는 신선했다. 책 내용에서는 화가가 어떤 이유로 지금의 심리적인 상태에 도달했는지는 화가의 인생을 통해 잘 설명했지만, 심리학 이론과 화가의 심리적 상태의 연결고리는 부실하다. 예를 들면, 폴 세잔이 전시회를 개최 했으나 호응도 없고 비난만 받자 고향으로 돌아와 생 빅투아르 산만 그리는 내용을 통해 폴 세잔의 우울감과 패배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폴 세잔은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리면서 색채의 차이로 표현하는 법을 터득했고, 이것이 새로운 성취로 연결되며 후대에 폴 세잔의 환원주의적 방법이 재평가 받는 내용이 어떻게 아들러 심리학과 연결되는지는 설명이 미흡하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심리학 용어나 개념에 진입장벽이 높아서 그런 듯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독자들은 따로 아들러 심리학을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심리학에 대한 큰 기대 없이 미술교양 서적으로만 책을 본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작품을 감상하는 깊이가 달라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화가는 4장 화가 내면의 상처와 표현주의에 나온 에곤 실레 였다.
아래 그림은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다. 저자는 에곤 실레의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세련되고 역동적인 선을 강조한다. 더불어 작품 속에서 인물이 보는 시선과 표정은 보는이가 당혹스럽게 만든다. 에곤 실레의 자신감과 자기애가 눈빛을 통해 느껴지며 과연 이 충만한 자신감과 자기애의 원천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저자는 에곤 실레의 아버지의 매독균으로 인해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였다고 서술한다. 이로인해 에곤 실레는 성에 대해 양가적 감정(쾌락과 공포)을 가지게 되었고, 성애와 관련된 작품이 많이 남겼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짐작과 추측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에곤 실레는 결국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듯하다. 오랫동안 자신을 지지하고 헌신했던 여자친구인 발리를 한 순간에 떠나버리고 중산층의 여성 에디트와 결혼을 한 것은 에곤 실레의 자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매몰찬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곤 실레의 살아온 배경을 알게 되었을 때 작품에서 화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에곤 실레의 입장에서 생각도 해보고 다른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미술의 재미를 알아가게 해준 파트였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는데 이 책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다. 화가의 살아온 인생을 알 때 우리는 화가의 그림에서 무엇을 더 보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아래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의 일부이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화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 그의 일생이 우리에 다가와 자신의 삶은 어땠는지 속삭이고, 우리의 지금은 어떤지 물어본다. 이것이 우리가 미술을 가까이 해야할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