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페스트를 이기는 방법
책정보
알베르 까뮈 저/ 김화영 역, 민음사, 2011년
카뮈의 ‘페스트’를 처음 마주했을 때, 표지에 실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침대 위에는 한 사람이 죽은 듯 누워있고, 옆으로는 가족이 모여 애도하고 있다. 몇몇 사람의 얼굴은 창백하게 보이고 표정은 굳어있다. 다만 벽쪽에 기대어 있는 사람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면을 응시한다.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서 인지, 죽은 이의 마지막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궁금함을 뒤로 한 채 누구의 작품인가 찾아보니, ‘절규’로 유명한 뭉크의 작품이였다. 평소에 뭉크가 표현하고자 했던 불안과 슬픔의 감정이 페스트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과 겹치면서 책을 읽을수록 표지의 그림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게된다.
그렇다면 소설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소설 ‘페스트’는 오랑시에서 발병한 페스트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묘사한다. 우리가 겪었던 코로나 시국과 비슷한 상황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전염병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도시는 폐쇄되고, 사람들 사이의 교류도 단절된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강제로 시설에 격리되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하루 또는 주간 단위로 공지된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도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마음속부터 병이 자라나게 된다. 법정 스님이 했던 말씀 중에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페스트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잠식한다.
까뮈는 이토록 비극적인 상황에서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페스트에 맞서는 방법을 서술한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에 따라 소설을 이해하는 것이 쉬울 듯하다.
먼저 주인공인 리유(리외)는 이 상황을 조용히 담담하게 기록해나간다. 그리고 의사로써 할 수 있는 일을 분연히 해나간다.
미지인 인물인 타루는 외지인으로써 리유를 도와 보건대를 창설하여 페스트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랑베르라는 인물은 파리에서 온 신문기자이다. 페스트가 퍼져나가자 오랑시를 떠나려고 했지만, 탈출하기 직전 보건대에 합류하기로 결심하고 페스트가 종식되는 순간까지 열심히 활동한다.
파늘루 신부는 그동안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페스트가 창궐했다며, 신의 뜻에 귀의할 것을 선동한다. 나중에는 보건대의 일원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랑은 시청 서기 보조로 남는 시간에 보건대에서 잡무를 도맡아서 한다. 시청에서는 일을 못한다고 상사에게 구박을 받지만 보건대 활동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부각된다.
코타르는 페스트라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개인의 잇속을 챙기려는 인물이다. 동시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선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까뮈가 페스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조리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알 수도 없고, 완벽한 대응도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부조리이다. 그렇다면 부조리에 당하며 자포자기한 채로 마주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가?
까뮈는 부조리에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많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담담하게 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미래에 낙관적인 희망, 신에 대한 믿음 이런 것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페스트’에서 리유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의사 리유는,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p.401-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바로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부조리를 행하는 모든 것에 동조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왜곡하지 않고,
우리의 지혜를 다음 세대로 전해주는 것,
아직은 우리 사회가 따뜻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야 말로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페스트에서 리유는 주인공으로서 까뮈의 철학의 대표성을 띤다. 그렇기에 리유에 관련한 내용으로 모든 서사가 이루어진다. 여기에 한가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까뮈는 장 타루의 인물도 소설속에서 비중있게 묘사하고 있다. 때론 리유보다 더 적극적인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장 타루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타루는 페스트에 대응하고자 보건대를 조직한다. 주변인에게 보건대 활동을 권유하기도 하며, 리유와 더불어 보건대에서 핵심인물이다. 타루의 인물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4장에 나온다. 타루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어느날 차장검사인 아버지를 따라 재판장에 간다. 사형이 선고되는 현장에서 타루는 부조리를 인식한다.
‘나는 그 사람이 사실 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가는 거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중략) 그는 마치 너무 강한 햇빛을 받고 겁먹은 올빼미처럼 보였습니다.’ -p322-
타루는 피고에 대한 공감을 하는 동시에 살인을 선고하는 사람들 또한 살인죄를 저지르고 있음이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p.329-
이 한 문장이 타루가 보건대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를 대변한다. 이후 리유와 타루의 대화에서 타루는 종교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지혜를 갖춘 성인이 되고 싶어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데거(왼쪽 사진)는 인간에게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 먼저 비본래적 삶의 방식으로 일상에 휩쓸려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는 삶의 방식이다. 삶에서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타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기 삶의 최우선 가치인냥 착각하면 살아간다.
두번째로는 본래적 삶의 방식이다. 삶에서 자기(현존재)가 정한 진지한 방식으로 주체 의식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소설 페스트에서 타루는 하이데거가 강조한 본래적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세우고 묵묵히 실천해 나간 사람이다. 까뮈는 리유를 통해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타루를 통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삶이 부조리하고 힘들때에도 우리는 저마다 자기에게 소중한 가치의 깃발을 들고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딛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