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소설 속 상징을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책
책 정보
윌리엄 골딩 저/ 유종호 옮김/ 민음사/ 1999년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했다. 한강의 책 중에서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그 때 기묘한 우울감을 느꼈다. 책 중간에 나오는 문장들이 깊은 곳에 감추어 둔 우울감과 마주하도록 끌고 가는 듯한 기분이였다. 소설 속 영혜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저항 했듯이 나 또한 그 우울감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책을 대충 읽고 덮었던 기억이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의 문장의 힘이란 이런거구나란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른 작가의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지 찾아보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읽었다.
소설은 핵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군이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후송하던 중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무인도에 떨어졌고, 한 소년이 소라를 불어 섬 곳곳에 퍼져있는 아이들을 모은다. 소라를 분 랠프, 랠프에게 소라를 불어서 생존자를 모으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돼지(피기), 나중에 랠프와 대립하는 잭 등이 등장한다.
랠프는 소라를 불어서 아이들을 모은 공으로 대장이 된다. 앞으로 무인도에서 살기 위해서 봉화를 피워야하고, 오두막도 짓고,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대표적인 규칙으로 소라를 잡은 사람만 말을 할 수 있도록 정한다. 돼지는 랠프가 대장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을 한다. 잭은 랠프의 의견이 못마땅 점이 있지만, 사냥부대로써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사냥에 집중한다. 하지만 랠프와 잭은 서로의 생각이 달라 충돌하게 되고 결국 아이들은 랠프와 잭을 주축으로 나누어 진다. 잭의 패거리는 얼굴에 흙으로 칠을 하고 돌아다니며 야만인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랠프는 소라를 손에 쥐며 자신이 대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설상가상으로 ‘짐승’이라는 미지의 불안과 공포가 아이들을 자극하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몇몇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잭은 랠프를 죽이려고 산에 불까지 낸다. 랠프는 잭을 피해 도망가다가 산불의 연기를 보고 도착한 해군에 의해 구조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 지는 것이 인간 내면의 야만성이다. 평소에는 이러한 야만성은 이성의 끈에 묶여 있지만, 미지의 불안과 공포는 이성의 끈을 느슨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인간 내면에 묶어둔 야만성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야만성은 멈출 줄 모른다. 그러나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은 아니니 잔인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항상 뇌리 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행동을 한다.
얼굴을 가리는 색칠이 얼마나 사람의 야만성을 풀어 놓아 주는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p.259-
잭의 패거리는 사냥부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흙으로 얼굴에 칠을 한다. 처음에는 완벽한 위장을 하여 멧돼지 사냥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산 속에서 ‘짐승’과 마주한 이후로 얼굴에 가리는 색칠은 내면의 야만성을 드러나게 했다. 더불어 익면성(匿面性)은 잭이 하는 활동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상한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 상황은 지금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 익면성과 익명성을 앞세워 타인을 직접 보고는 말도 못할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례를 뉴스 속에서 종종 들을 수 있다.
잭으로부터 인간 내면의 포악함을 드러냈다면, 랠프를 통해서는 어설픈 리더의 단편을 제시했다. 랠프는 민주적인 모임을 만들고 소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며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상은 랠프는 우연한 계기로 돼지의 도움을 받아 리더가 되었다. 아직 준비가 안된 리더는 민주적으로 모임을 끌고 갈 능력이 부족하고 그 결과 모임은 해체된다. 그럼에도 리더의 자리는 내려오기 싫어 소라를 하나의 상징으로 삼고 다른 대안은 없이 소라에게만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랠프는 소라가 깨진 이후로 잭의 패거리가 쫓아오자 양쪽이 날카롭게 깍인 창을 든 묘사가 나온다. 랠프는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창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향하던 랠프가 창을 잡는 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는 상징으로 비추어진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9명의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다. 벌써 10.29사건 2주년이 다가온다. 이날은 국가 행정이 무너진 사건이다. 사람이 많이 몰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대책은 미흡했고, 사고 현장에 있는 경찰의 대응은 무능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 져야 할 어른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변명만 늘어 놓는다. 아래 2024년 5월 서울신문의 기사를 보면 처벌 받은 사람도 없을 뿐더러 진상규명도 명확하지 않다. 마치 랠프의 소라가 깨어진 것 처럼 이날의 사건은 국가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그렇다면 랠프가 소라 대신에 창을 잡았던 것 처럼, 이번 정부도 민주주의를 포기할 것인가.


우리는 소설 속에 나오는 돼지(피기)와 같이 권력에 짓눌려 제대로 말도 못하고 대항하지 못하는 삶을 많이 보아왔다. 소설 속 돼지(피기)는 혼자이기 때문에 잭에 대항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과 다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소설 속 나오는 소라도 한 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라를 가지고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끼리 모여 같이 소라를 분다면 민주주의는 꺼지지 않는 봉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