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VS 인간 실격의 ‘요조’
책정보
다자이 오사무 저/김춘미 역, 민음사, 2004년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 나온 미성숙한 인간은 인간 실격에 나오는 ‘요조’라고 볼 수 있고, 성숙한 인간은 호밀밭 파수꾼의 ‘홀든’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 실격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은 둘 다 부유한 가정환경에 자란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은 정반대이다. ‘요조’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찰과 불안에 휩싸여 자신을 감추고 살아간다. 호밀밭 파수꾼의 ‘홀든’은 오히려 사회에 저항하고 행동에 거침이 없다. 이런 이유로 ‘요조’와 ‘홀든’은 기존 시스템에 귀속되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비난할만한 행동을 한다. 알콜중독자가 되거나 여자를 찾아 기웃거린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일종의 성장통으로 받아 들이기에는 다소 갸웃거리게 되는 여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
‘요조’와 ‘홀든’의 방황은 비슷한 경로로 진행되다 명백히 갈라지는 부분이 있다. 이 분기점에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가족이다. ‘요조’의 기행은 가족들에게 용납되지 못하고, 가족으로써의 요조를 거부한다. 결국 요조는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홀든’은 일탈의 끝에 동생 ‘피비’가 오빠의 어떤 행동에도 지지와 믿음을 보내줌으로서 홀든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동생을 지키기 위해 가족 곁으로 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두 소설을 비교하다보니 가족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크게 와닿는다.
개인적으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보다는 인간 실격의 ‘요조’에게 더욱 인간적인 정이 간다. 비록 스스로가 말하는 인간 실격의 삶을 살았지만, 요조가 겪은 행동과 생각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보거나 생각해보았던 부분이 확실히 있다. 아래에는 인간 실격에 나온 요조의 말을 적어두었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p.61-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p. 129-
가끔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상황인데도 어느 순간 불현듯 불안이 밀려온다. 갑자기 이 좋은 것들이, 즐거운 시간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내일에 갑자기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애써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지금 현재에 더욱 집중하여 불안을 털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적이 있다.
직장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인데도 직장 상사의 부탁에 마지 못해 일을 털컥 받아들고, 이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을 때도 있다.
인간 요조는 소설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일상의 어느 한 순간 나의 표상을 소설 속에 구현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인간 실격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거의 나와 마주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예로 요조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광대를 자청한다. 나도 학창시절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슬픔과 어두운 내면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 크게 웃고, 과장된 행동으로 웃음을 유도했다. 마치 정물화에서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사물의 그림자를 더욱 어둡게 칠하는 것 처럼 나의 어둡게 물든 마음을 감추기 위해 더욱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주변에서 인간 실격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책을 읽을수록 음침해져 읽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직까지 과거의 나와 마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언급한 호밀밭 파수꾼에 나온 문장에서 미성숙한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 실격의 ‘요조’인가? 과거의 ‘나’인가? 미성숙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 미성숙이란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미성숙이라는 정의를 내기 위해선 ‘성숙하다’라는 완전한 결승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완전한 결승점은 아무도 모른다.
과학에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 실험이 있다. 밀폐된 상자 속에 고양이와 독극물이 같이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독극물이 퍼진다. 이때 일정 시간 뒤에 고양이의 생존 여부를 묻는 질문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https://pixabay.com/)
결론은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에서의 성숙하다라는 것도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노력을 할 뿐이다. 개인의 노력으로도 부족하다면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지금의 성숙한 발자국을 인생에 남겨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