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 수업






한줄평
아름다움에 대한 의미를 알려주는

책 정보
윤광준 저, 지와인, 2018년

가끔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볼 때, 현대미술을 어떻게 감상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 든다. 그나마 교과서에서 몇번 본적 있는 그림은 어떻게 봐야 할지 감이라도 온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림을 보면, 배경, 빛과 그림자, 붓 터치, 색감 등 시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서민의 고된 삶에 대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그러나 현대 미술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그것 부터가 난해하다. 현대미술의 대표적 거장인 피카소의 ‘거울 앞의 소녀’ 이다. 그림에서 무엇을 의도하고 싶은지 그림속에 어떤 부분을 포커스를 두고 보아야 할지 그림 초보인 사람이 보면 도대체 왜 이 작품이 유명한지 잘 모르겠다.








피카소, 거울 앞의 소녀

 미술감상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토로 할 때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으니 본인이 느끼는대로 감상하면 된다는 답만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다들 각자의 답을 가지고 있기에 나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막막한 느낌이 들 때는 책을 찾아봐야 한다.

 ‘심미안 수업’이란 책은 우리 주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안내해준다. 책에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지 설명한다. 책의 첫 머리로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부터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나의 답이 있어야 예술을 감상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나는 주로 작품에서 메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작가의 의도가 나의 가치관과 맞을 때 작품에 몰입하면서 아름다움을 넘어선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 그림은 뱅크시의 벽화 중 하나이다. 불의나 불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염병 대신 꽃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전하고 있다. 




뱅크시, Flower Thrower, 2003

 저자는 책에서 인간의 흔적이 뭍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은 책에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고,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이 뭍어나는 작품에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요인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사가 있는 메세지에 더욱 와닿는 것 같다. 이것은 나 또한 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동병상련일 수도 있고, 같은 약자로서의 연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전시를 즐기는 여섯 가지 방법도 책에서 설명한다. 이것은 작품 하나를 이해하는 방법 보다 우리가 작품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들을 설명한다. 예를 들면, 유료 전시를 보고, 같이 갈 사람을 잘 고르고,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보라는 등 조언을 한다. 최소한 이부분만 지킬 수 있다면,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이 두렵거나 망설여 지지는 않을 듯하다. 드디어 미술과 관련된 마지막 부분에는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이 나와있다.

 현대 미술은 저자의 의도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전에 저자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서 알고 있을 때 그림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을 제대로 나의 방법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작가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의도를 담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미술과 관련된 부분이 넘어가고 뒷부분에는 다른 예술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다. 사실 저자는 미술보다는 다른 예술쪽에 조금 더 정성을 쏟은 느낌이 난다. 왜냐하면 저자는 미술 부분에서는 교과서 적인 내용으로 미술 감상의 방법을 서술했다면, 뒤에 나오는 음악, 건축, 사진 파트에서는 저자가 즐기는 취미로써의 주는 기쁨에 대해 집중하였다. 

 음악파트에선 저자가 음악을 마주하는 자세를 느낄 수 있다.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의 휘발성에 아쉬워 하고, 변형과 왜곡과 압축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것을 지켜가려는 마음가짐이 내용에서 잘 드러난다. 유투브를 재생하더라도 1.5배속으로 재생하며 내용을 파악하고, 드라마나 영화도 몰아보기가 유행인 지금, 음악만은 자신의 빠르기를 지켜나가는 것이 하나의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니. 새로운 심미안이 하나 늘었다는 기분이 묘하게 즐거워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잔잔한 음악과 한캔의 시원한 맥주가 주는 행복이 나를 감싼다. 

  건축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어렸을 땐 입시와 취업이란 목적 하나만 보느라 세상의 아름다움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였다. 그런 삶이 후회스럽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지금 삶에서 많은 아름다움이 곳곳에 있음을 알게되었다. 다양한 장소에 머물면서 건물 안과 밖에 있을 때 주는 경험이 다르게 다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요즘은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건물의 외관과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건축물의 재료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채광은 어떤지, 높이는 어떤지 관심을 가질 수록 보이는게 많고 궁금해지는게 많다. 아직 모르는게 많지만 작은 관심이 앞으로 건축에 대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길러 줄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 저자의 모든 필력이 집중된 곳이 사진 파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사진에 대한 예술적 매력도를 잘 느끼지 못한다. 사진이라는 것이 누구나 쉽고 빠르게 찍고 확인 하기도 하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만났던 전문가들은 사진 하나에 정성을 다해서 찍기 보다는 박리다매 하듯이 셔터를 눌러댄다. 심지어 졸업앨범 촬영을 하시는 분은 뷰파인더로 인물을 보지도 않고 사진을 찍는다. 그렇기에 나는 사진에 대한 예술성이 다른 미술작품, 음악, 건축에 비해 깊지 않을 것이란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사진에 대한 애정과 사진이 예술로서 가지는 다른 차이를 서술함으로써 사진 또한 하나의 예술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의 한줄의 문장이 사진을 달리 보게 되는 인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어떤 중요한 순간을 모두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인식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에 따라 기억의 왜곡이 일어날 수 도 있다. 이런 것들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불완전성에서 완전함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며, 불완전성이 주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 보다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 역할을 사진이 하고 있다. 내가 사진 작가라면 어떤 작품을 찍고 싶은가 상상하게 된다. 문득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작품이 떠오른다. 작품의 크기에 한번 압도되고, 작품이 우리의 인생을 나타내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될 때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이런 작품을 사진으로 나타내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이런 상상을 하며 입가에 웃음이 핀다. 이것이 예술의 주는 행복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