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상상을 실현하는 능력
책 정보
미겔 데 세르반테스 저/ 김정우 역/ 푸른숲주니어/ 2007년
AI와 로봇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카페에서는 사람 대신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고, 음식점에서는 다 먹은 그릇을 로봇이 옮겨 정리한다. 사무실에서는 빅 데이터와 AI와 결합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의 결론은 상상력이다. AI와 로봇은 주어진 상황에 판단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스스로 상상하려면 아직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상상 속 세상에서 큰 뜻을 품고 펼쳤던 돈 키호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마음껏 상상하도록 권유한다.
돈 키호테는 시골의 하층 귀족이다. 기사도 소설에 심취하여 결국 스스로 편력 기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산초 판사와 함께 여정을 떠난다. 돈 키호테는 술집을 성으로, 술집 주인을 영주로 생각하며 기사의 작위를 내려 달라고 하고 주변 사람들은 돈 키호테를 미친 사람처럼 대한다. 종자인 산초 판사도 돈 키호테가 제정신이 아닌 것을 알지만, 긴 여행의 끝에 얻을 실리적 이익을 취할 생각에 들떠있다. 산초 판사는 이상과 현실이란 연못에 양발을 넣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산초 판사가 한 지역의 영주로 부임하기 위해 어려운 판결을 현명하게 내리는 부분에서는 산초 판사의 어수룩한 모습은 잊혀지고, 현실적이고 현명한 새로운 모습이 부각된다. 이처럼 소설 속 산초 판사의 캐릭터는 아주 입체적으로 맛깔나게 묘사되어 있다.
돈 키호테의 기행은 소설 ‘돈 키호테’의 핵심요소이다. 돈 키호테는 풍차를 거대한 거인이라 생각하고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달려가는 일화, 이발사가 들고 있는 세숫대야를 전설적인 투구라고 생각하고 뺏으려 달려드는 일화,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상대로 싸움을 하는 일화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돈 키호테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읽을 수록 돈 키호테의 매력에 빠져든다.
나는 살면서 하나에 이렇게 빠져 든 적이 있을까? 하나에 빠져 무엇인가 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쉽지 않다. 체력과 현실에 부딪쳐 적당히 문제 없을 만큼만 하고 넘어가고 다음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하루가 반복된다. 반복된 기계적인 일에는 열정이 빠져있다. 사회에서는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집, 차를 가지고 비싼 옷을 입고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돈은 내면의 열정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열정을 쏟을만한 일을 찾는 것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소설 속 주변 인물의 대응을 보는 것도 소설 속 또 다른 재미이다. 어떤 이는 미치광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 돈 키호테의 장단을 맞추는 사람, 소설 뒷 부분에 등장하는 공작은 돈 키호테를 모셔와 한편의 영화를 촬영하는 것처럼 상황을 기획하여 돈 키호테의 반응을 즐기는 사람이 나온다. 특히 공작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돈 키호테와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돈 키호테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 시작했을지라도 나중에 돈 키호테에게 상황을 설정하고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짜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웃고 즐거워하고 참여한 모든 이가 행복해 보였다. 돈 키호테의 상상력이 주변 사람에게 스며들었다.
살면서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나중에 어떤 소설을 쓰고 싶다. 그리고 소설 속 상황과 등장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즐거워 한다. 또 다른 예로는 로또를 사고 나면, 당첨 되었을 때를 상상하며 행복해 한다. 상상은 실현 가능성이 낮더라도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 상상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돈 키호테의 상상에 같이 참여한 공작처럼 우리 주변에 나와 같은 상상을 하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다면 상상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덜 큰 결심을 하더라도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