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기술 발전의 두려움을 기대감으로 바꾸는 책
책 정보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저/ 김승진 역/ 생각의 힘
1965년 이정문 화백이 2000년대의 생활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이 이슈인 적이 있었다.

이정문 화백이 그린 내용이 지금의 우리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꽤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기술 발전을 통해 모두가 더 발전된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부모님 세대보다 더 발전된 기술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체감하며 기술 발전에 모두가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권력과 진보’의 저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기술 발전의 효과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은 인류 문명의 큰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철을 제련하는 기술의 발달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였으며, 지금은 농기계를 통해 소수의 사람으로도 엄청나게 넓은 면적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 방향이 노동자와 경쟁을 하게 되면, 노동자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자본가는 더 많은 수익을 독식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산업 혁명이 일어나던 영국을 들 수 있다.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새로운 기계들이 많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남은 노동자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를 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임금이 싸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도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이 모든 원인을 기계의 탓으로 돌리고 공장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더스트리 4.0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공장 자동화를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최근 연합뉴스의 기사의 제목만 보아도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와 지금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수익을 독식하기 위해 노동자와 경쟁하는 AI와 로봇을 도입하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제조업 공장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매장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사람이 아닌 키오스크로 바뀐지 오래되었고, 음식점에 그릇을 수거하는 로봇이 돌아다닌다. 테크놀로지는 빠르게 저숙련 일자리를 차지했다. 그 결과 저숙련 노동자들은 속물적인 사회에서 기계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감정적 형벌을 받고 있다. 일례로 배달 노동자, 음식점 직원, 콜센터 직원들에게 갑질과 욕설을 하는 사람의 뉴스를 종종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테크놀로지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첫번째, 내러티브와 규범을 바꾸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테크놀로지를 이용할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밴드웨건 효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동자의 숙련도와 한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두번째는 길항 권력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 조합이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 보수 정권이 집권할 때마다 노동 조합에 대한 탄압은 계속 되었다. 공권력과 언론은 노동 조합을 생 때를 쓰는 불한당으로 낙인 찍으며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다. 노동자들은 노동 조합을 중심으로 단합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며 사주에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 힘이 없는 노동자들이 소수의 자본가를 압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강력하다.
세번째로는 정책적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제도화 된 법과 시스템을 구축하여 자본가들이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도 이 부분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사례를 제안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발전 중인 테크놀로지의 이득이 누구에게로 가는지 모호한 경우가 있다.
교육부에서 AI교과서를 학교에 도입하려고 한다. AI교과서를 사용하면 학생들의 개별적인 수준에 맞는 학습과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AI교과서를 졸속으로 만들었다. 지금 나온 AI교과서는 반복적 문제 풀이와 정답률을 잘 분석하는 반쪽짜리 AI교과서이다. AI교과서라는 테크놀로지의 이득은 구독료로 막대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는 출판사 업체와 ‘세계최초 AI교과서 도입’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이주호 장관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AI교과서 도입을 반대한다. 언론에서는 AI교과서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네오 러다이트 주의자로 매도한다.
물론 AI교과서가 챗봇 수준을 뛰어넘는 개별화된 피드백을 제시할 수 있다면, 부분적 도입은 찬성한다. 예를 들면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들에게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다. 하위권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개념과 학습을 하기 위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지식을 인지구조와 연결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AI의 능력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들은 이미 기본적인 개념과 다양한 지식들이 머리속에 있다. 상위권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 활동과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AI가 할 수 없다. AI의 발전 정도에 따라 테크놀로지의 이득을 받는 대상도 달라진다.
테크놀로지의 이득이 누구에게로 향하는지는 계속해서 감시가 필요하다. 저자가 주장한 세가지 방법을 통해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이득을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정의(正義)에 대해 진심인 존 롤스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 했다.
사회는 반드시 ‘ 우연한 배분이 가장 불운한 사람들에게 이롭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AI와 경쟁하는 시대에 태어난 노동자는 불운하다. 하지만 사회가 불운한 사람들을 그대로 놓아두어선 안된다. 그들에게 이롭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모두가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