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한줄평
능력주의에 죽비를 내리꽂다.

책 정보
마이클 샌델 저/ 함규진 역, 와이즈베리, 2020년

2018년에 교육계에서는 중요한 논쟁이 있었다. 2022년 입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을 확대할 것인가? 정시를 확대할 것인가?’란 주제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정시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약간 우세한 추세였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 ‘공정성’이란 화두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더불어 2019년에는 조국 법무부장관의 아들과 딸의 진학에 입시 부정이 있었다고 검찰과 언론이 선동하여 조국 법무부장관이 하차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우리나라의 ‘공정성’ 정의는 ‘기계적 공정함’이 되었다. 정시확대에 반대하는 사람, 조국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은 좌파세력이라는 정치적 넝마를 걸치게 하였다. 

  마이클 샌델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나라에서 공정함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주어기는 기회가 공정하다고 말할수 있는지, 능력주의가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여를 하는지 반복적으로 물어보고 있다. 능력에 따른 평가와 성취는 사람들에게 공정하다는 착각을 준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능력주의에 심취해서 대체 불가능한 패러다임이 된 지금,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다양한 예시와 함께 설명한다. 저자는 능력주의의 폭정이라고 까지 언급하며 문제점을 3가지 제시한다. 

 능력주의는 개개인의 노력이 성취와 연결이 되며 개인의 책임을 무한히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 깔보는 현상이 나타난다. 반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며 자책하며 심지어 성공한 사람들의 비난에 반발하는 것 조차 못하게 막아버린다. 그 결과 능력주의의 혜택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연대가 불가능해진다. 

  능력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저자는 대학이 인재 선별기로써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런 대학의 졸업장을 가진자는 프리미엄을 누리는 사회는 비대학 출신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간접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투표에서 뽑힌 정치인들을 보면 대부분 엘리트 출신이다. 엘리트 출신 정치인들은 일반 시민과의 공통분모를 찾기도 힘들기 뿐더러 정치인과 일반 시민과 만날 기회도 거의 없다. 그 결과 일반 시민의 정치적 요구는 묵살되기 쉽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다.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한 첫 해 그동안의 나의 노력을 통해 합격이라는 성취를 이루었으며, 이것은 온전한 나의 능력에 대한 결과물이였다. 이런 능력주의에 찌든채 처음 발령난 학교는 공고였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과 멸시가 섞인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니 공고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학교에 성실하게 나오는 것만 해도 대단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밤늦게까지 고깃집 알바(그 때 당시 고깃집이 시급을 가장 많이 주었다)를 하는 학생,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 한부모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전혀 부모님의 돌봄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학생 등 열약한 환경에서 공부에 관심을 둘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노력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사회에 나가면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인정하며 능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공고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허언증에 걸린 몽상가의 말 정도 였다. 내가 본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탐색할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설령 자신의 능력을 알았더라도 능력을 개발할 시간 및 경제적 뒷받침 없었다. 이런 학생을 비난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능력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저자는 능력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몇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인재 선별기를 자처한 대학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특히 기득권 층이 들어가기 편한 입시제도를 없애버리고, 대학 수업을 이수할 정도의 능력이 되는 학생들을 추려낸 다음 제비뽑기를 하자는 허무맹랑하지만 상징적인 제안을 한다. 
 두번째로는 공동선을 회복하기 위한 다소 도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성취는 자신의 능력만의 결과가 아니라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취를 이룬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시대적 ‘운’을 타고 났으며,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수 있는 뒷배경을 가진채 태어난 운’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운’을 인정하면서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궤도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을 활성화 하여 사회적 연대의 회복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다. 

  ‘평균의 종말’을 쓴 토드로즈는 학생들의 성적 대신 실력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고, 학위가 아니라 자격증을 수여하는 제도로 바꾸자고 제안을 한다. 마이클 샌델이 주장한 대학 입시 제도 개선에서 더 나아가 대학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에서 인증하는 자격증 제도로 바꾼다면 일류 대학의 네임벨류를 걷어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방과 차이를 찾고 비교하느라 인간이 가진 공통점을 쉽게 잊는다. 누가 나보다 더 많이 가졌는지와 같은 비생산적인 생각에 시간을 들이기 때문에 공동체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감대가 무엇인지 찾지 못한다. 그리고 각자의 고통은 개인의 언어로 제약된 공간 속에서 말하다보니 공통의 고통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사회 속의 담론으로 자라지 못한다. 최근에는 온라인 상에서 사람들끼리 대화도 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겼다. 환영할만 하다.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만날 수 있는 기회나 장소가 더 많아져야 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형성된 담론이 정치적 시발점이 된다. 

 다시 처음에 제시한 교육문제로 돌아가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입시제도 하나 바꾼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다른 사회문제도 모두 정치와 맞닿아 있다. 
 

 저자는 정치인들에게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우리가 부여한 이정표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정치적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소시민이 정치권력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실제적 방법이다. 전파 망원경도 한대로 관측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여러 전파 망원경을 동기화시켜 관측을 하면 그 범위가 매우 넓어진다. 실제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블랙홀까지도 관측하였다. 이런 것처럼 교육 문제, 공정함에 대한 한 정의, 능력주의의 문제점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화된 시민의 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