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자존감을 높이는 핵심 요약서
책 정보
김태형 저, 갈매나무, 2018년
최근에 우연히 들리던 노래에 마음이 쏠린 적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한편의 시와 같은 가사가 멜로디와 잘 어우러져 귀에 자꾸 맴돈다. 그 노래는 곽진언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이다.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 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왜 이 가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지 생각해보니, 요즘에 읽는책 때문인 것 같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인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이라 더욱 끌린 것 같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책 제목에서 알다시피, 자존감과 관련된 내용이다. 먼저 한국 사회에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원인을 제시한다. 사회적 이유와 개인적이유로 나눌 수 있지만, 두 원인이 개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낸다.
사회적 이유로는 한국 사회가 잘못된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경제적인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개인적 이유로는 어렸을 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어린시기를 지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의 의견에 나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사람을 경제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본인이 노력해서 경제적인 부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인정해주어야 한다. 다만, 경제적인 기준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이 가진 다양성을 하나의 기준으로 맞춰서 평가하려는 획일성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분석 후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특징과 문제점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자신감으로 위장하는 개념으로 ‘가짜 자존감’의 개념을 제시한다. ‘가짜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과시와 우월, 지배와 통제, 계속적인 확인을 통해 본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자기방어를 한다. 더불어 사회는 이러한 가짜 자존감이 정당한 것으로 위장시켜준다. 돈 많은 사람, 외모가 뛰어난 사람, 정치가 등 이런 사람들의 과시와 우월함을 언론에서 칭송한다. 공권력은 사회적 약자의 행동을 제한하는데 종종 사용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경찰들이 시위나 파업의 현장을 진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건희 여사는 마치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확인(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인지 이제껏 어떤 영부인 보다 자주 언론에 모습을 비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문제점으로는 무가치함, 무기력감, 열등감, 수치심, 시기와 질투,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다. 부정적 감정은 주변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주며, 인간관계의 문제는 다시 자존감을 낮추는 순환고리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할 차례이다. 사회적 가치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올바른 가치기준을 세운 후, 그것에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
더불어 저자는 자기사랑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인간이다’라는 사실만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p.216-
‘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라는 책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나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드는 첫 번째 사람은 슬프게도 나 자신이다.’ 우리는 자기사랑과 존중이 중요한 것을 알지만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한다. ‘부정본능’이 먼저 작동하다보니 잘못에 대한 자책은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사랑과 존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자기사랑과 존중이 개인을 넘어 타인에게도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예전에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말씀하신 ‘애기애타’와도 맥이 닿아있다.

[도산의 친필 휘호, “애기애타”, 도산아카데미 홈페이지 ]
사실 여기까지는 이제껏 읽어보았던 다른 심리학 책에서 이야기 했던 흔한 말이였다. 하지만 김태형 작가는 개인의 자존감을 사회적 연대와 관련지어 서술한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의 시작에서부터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쓸모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쓸모’라는 의미는 수단적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 해야한다. (자세한 내용과 의미가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시라. ) 과거에는 사람들 사이에 연대가 어느 정도 유지가 되어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개인들의 파편화를 넘어 원자화 단계로 진입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줌에서 만나는 친구의 얼굴이 익숙하고, 쉬는 시간에도 친구와 어떤 상호작용은 이루어질 수 없다. 선생님은 학생과 상호작용은 줄어들고, 서로 필요한 말만 오고간다. 여기서 어느 누구와도 연대는 없다. 저자는 자존감 확립과 향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건강한 타인들 혹은 사회 집단이라고 한다. 올바른 잣대로 나를 긍정적으로 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내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에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 자존감도 높아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