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한 문장으로 심리학을 들여본다.
책 정보
박홍순 저, 웨일북, 2018년
최근 고3들은 학교에서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요구, 학생 인권, 분실 및 파손에 대한 학교의 부담 때문이다. 남학생들은 쉬는 시간 마다 게임을 하며, 여학생들은 SNS를 살펴본다. 공부에 손을 놓은 학생들은 더욱 핸드폰에 열심히 한다. 학교 준비물로 보조 배터리는 필수이며, 콘센트에는 문어발처럼 핸드폰이 연결되어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공부를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해보자는 나의 말은 그냥 꼰대 어른의 잔소리이다. 학생들은 현실을 도피 하기 위해 더욱 핸드폰에 몰입하는 듯 했다. 유투브를 보는 동안, SNS하는 동안, 게임을 하는 동안 만큼은 현실을 의식의 저편으로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였다. 이런 마음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불안에서 오는 것일까? 열등감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입시 제도에 대한 반항일까?
‘한문장으로 시작하는 심리학 수업’에서도 불안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리만은 인간의 특징적 심리 현상인 불안이 어린 시절의 불안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p.272-
리만은 불안을 통해 나타나는 인성을 4가지로 표현한다. 분열적, 의존적, 강박적, 히스테리성 인성이다. 특히 강박적 인성을 가진 아이는 유아기에 부모와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해 변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진다고 한다. 그 결과 새로운 것, 알 수 없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에 무조건적으로 회피한다고 말한다. 고3 학생들이 공부를 회피하는 것도 강박적 인성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도 없고, 공부를 할 수록 모르는 것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공부 잘 하는 아이를 만들고 싶다면 어린 자녀가 행복한 유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당한 열등감은 현재의 불만스러운 상태를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열등감이 병적으로 심화될 때 생긴다.
콤플렉스 수준에 이르면 열등감은 유익함 쪽으로 발휘되지 못하고 자신을 나락에 빠트려놓은 채 방치하거나 자기기만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게 한다. -p.257-
아들러는 열등감과 관련해서 깊은 통찰을 보인다. 위 글은 책에 나온 아들러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고3학생들이 핸드폰에 몰입하면서 늘 하는 말이 몇 개 있다. 공부하다가 잠깐 쉬는거라고, 잠깐 핸드폰을 해도 성적이 안 떨어진다고 한다. 위에 인용한 글을 읽는 순간 학생들이 자기기만과 허위의식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할 시간도 없다는 고3학생이 핸드폰을 그렇게 하면서도 잠깐 쉰다고 이야기하고 성적이 안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병적인 열등감의 문제도 어린 시절 가정 문화이다. 리만과 아들러 모두 유년시절의 가족과의 관계와 경험의 중요성을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다.
이 글을 쓰다보니 ‘고3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나의 생각이 너무 고리타분한지 되돌아본다. 책을 다시 처음부터 살펴보다 보니 아래 두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종교나 도덕은 “죄를 고안함으로써 지배”한다. -p.27-
중세를 지나 성년식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절차는 점차 완화 되었다.
(중략)
이렇게 고통스럽고 번거로운 절차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교육으로 대체된다.
대신 오랜 교육 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성년식 만큼이나 특정한 집단 심리는 충분히 주입 받게 된다.
–p.78–
나 또한 ‘고3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나 혼자만의 ‘도덕’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집단 심리’를 강요하고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수능 만점자였던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구속된 사건이 발생했다. 성적 만능주의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 사람들의 화두에 계속 오른다. 세상은 공부 잘하는 것 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사회가 정해준 1등 공식이 있는 상황에서는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처럼 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달리는 경주마에 채찍질을 하며 더 빠르게 달릴 것을 요구 해야 하는지, 씌어진 눈가리개를 벗겨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인지 현실적 선택은 쉽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는 좋은 성적을 내서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계속 요구하는데, 나만 다른 이야기를 하며 학생들의 행복을 찾아 준답시고 입시와는 동떨어진 수업을 하는 것이 올바른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 한 명쯤은 조금 딴 소리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다보니 인간에 대해 점점 관심이 간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거나 같은 상황에서 다른 반응을 보일 때, 때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거나 행복해 하는 나의 모습을 느낄 때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탐구욕이 솟는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심리학 수업’이 도움이 될 듯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훌륭한 책이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4’, 조지오웰,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