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타인의 고통을 마주한 우리의 태도
책 정보
수전 손택 저/ 이재원 역/ 이후
니체는 삶에서 항상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고, 고통을 통해 배움이 일어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마주할 때 느끼는 것은 배움의 소중함 보다는 좌절과 힘듦이다.
‘문학 작품에서도 행복이나 즐거움은 대게 추상적인 개념에 머무는데 비해 고통은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정시몬,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철학 브런치, 부키
고통은 우리의 감정마저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만든다. 아쉽게도 타인의 고통은 그렇게 까지 구체적인 것 같지 않다. 수전 손택은 전쟁터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설명한다.
‘사발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힌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
수전손택, 타인의 고통 머릿말 중 일부
스펙터클한 이미지가 가진 영향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더욱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한다. 우리는 전해지는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대해 연민을 보내지만, 실상은 이런 잔혹한 일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안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전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은 못할 수 있다. 개인사가 너무 바쁘거나 타인의 고통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순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거나 비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때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이것을 정치적 선동에 이용하려 한다며 감추려고 하고 탄압했다. 사악한 정부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관련된 기사에 악플을 달았다. 최근에 일어난 제주항공 참사에서도 정부인사들은 이 슬픔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하여 탄핵사건을 더디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였으며, 몇몇 시민들은 기사에 악플을 달았다.

부산일보에 실린 2025년 1월 13일자 헤드라인이다. 다행히 악성 댓글을 작성한 사람에게 잘못을 물을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이 겪는 아픔과 슬픔을 우리는 고스란히 겪을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행동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비난하거나 이것을 이용하려는 그 어떤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이런 행동을 하는 악인이 나타났을 때에는 확실히 처벌 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여 다시는 이러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