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저자의 필력으로 모든 혐오를 파헤치다.
책 정보
박민영 저, 북트리거, 2020년
2022.10.29.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다. 할로윈데이를 맞이하여 이태원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할로윈데이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 다분히 예상되었음에도, 국가는 159명의 소중한 사람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10.29 참사 이후 온라인에서는 사망자에 대해 조롱을 하기도 하며, 국힘당 소속 시의원이 ‘자식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라는 글을 SNS에 남겨 혐오의 확산을 가져왔다. 그리고 미디어에서 10.29 참사와 관련된 영상을 접한 몇몇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태원 압사’ 놀이를 한다.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의 죽음은 또 다른 재미있는 놀이가 되어버린다.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원인은 무엇이고 해법은 어떤 것인지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의 저자 박민영은 책의 머릿글에 밝힌다.
‘혐오가 난무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민중의 고통, 불안, 분노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중략) 그 공격적 에너지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용인된 방향으로 분출되다 보니 혐오로 귀결된다.’ -p.13-
‘혐오를 줄위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중략)
둘째, 경제적 격차를 줄여야 한다. (중략)
셋째, 공동체적 가치 지향을 담은 진보적인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 -p.14-
책에는 혐오의 대상을 4종류(세대, 이웃, 타자, 이념)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혐오의 종류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다양한 혐오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우리는 해석하고 행동한다. 이 기준은 사회적 협의를 통해서도 만들어지기도하고 특별한 이유없이 예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주양육자는 ‘엄마’다. 엄마가 아빠와 똑같이 일을 하더라도, 아이의 감정, 상태, 발달상황을 체크하고 신경쓰는 일은 엄마 몫이다.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는 부모님도 대부분 엄마다. 여자가 아이를 좀 더 섬세하게 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남자들의 암묵적 합의와 안일함이 모성애로 둔갑한다. 여기서 육아는 ‘엄마’의 일이라는 기준이 만들어진다. 또한 책에서는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장애인의 반대말로 ‘정상인’을 쓰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이 말은 장애인을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내몬다.’ -p. 121-
여기서 우리는 기준이 ‘사람’이 아닌 ‘장애’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준이 사람에 맞춰져 있는 세상에 산다면, 우리는 명칭을 장애인-일반인 할 것이냐 장애인-비장애인 으로 부를 것이냐 이 주제로 반목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의 기준을 세우는 것에 조금 더 기민함을 보여야 한다.
책을 읽다보니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혐오와 비난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걸까? 혐오와 비난은 비슷해 보이지만, 매체에서 접할 땐 여성비난, 노인비난 이런 단어보다는 여성혐오, 노인혐오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사전에 찾아보니 혐오는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의 이유로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이다. 비난은 ‘다른 사람의 흠이나 잘못을 들추어 사실보다 부풀려 나쁘게 말하다.’이다. 차이점은 혐오는 감정이고, 비난은 행동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대한 자유가 있다. 어떤 것이나 행동을 싫어할 수도 있고, 기피할 수도 있다. 혐오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혐오가 매체나 미디어를 통해 증폭이 되어 흠이나 잘못이 아닌 것을 비난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나쁜 것이 된다. 그래서 매체나 미디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언론은 국민이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한다. 언론이 판단한 사실을 국민에게 객관적인 사실로 포장하면, 우리는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비난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에도 실려 있듯 2012년 길가던 20대 여성을 살해한 오원춘 사건과 2014년 동거녀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박춘풍 사건을 언론이 보도할 때 조선족에 방점을 두어 보도하였다. 보도 이후에는 조선족에 대한 비난과 국민적 분노를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한스 로스링의 ‘팩트풀리스’에서 비난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라고 말한다. 문제의 원인을 찾는 노력은 꼭 필요하지만, 복합적 이유를 단순한 인과관계로 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난의 본능을 자제해야한다.
혐오의 감정이 비난의 행동으로 치환되는 조건이 있다. 자존감 결여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비로소 안심한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김태형) -p.32-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수록 부정적 감정이 강해진다. 시기가 질투, 혐오의 감정이 드러난다. 이것이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밟으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권력자들을 비난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
우리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타인으로 부터의 존중이다. 이러한 존중은 가족 안에서 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가족의 구성을 보면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여자, 노인, 청소년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미운 마음, 시기하는 마음, 혐오의 감정들이 고개를 들 수 있다.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있다보니, 부정적 감정이 당당히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우리 마음 한 곳에 확실히 오랫동안 자리잡는다. 가족 안에서 작지만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작은 존중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족안에서 존중을 받는다면, 타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감정인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굳이 타인에게 비난하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