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철학

한줄평
정답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라.

책 정보
이진우 저/ 휴머니스트/ 2017년

학교는 정해진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연습한다. 이것이 학교의 주된 목적은 아니라고 믿고 있지만, 현실은 정답을 잘 찾는 학생들을 많이 배출할수록 사회에서 좋은 학교로 인정받는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전체가 정답 찾기에 과몰입하고 있다. 학교에서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연습을 기계처럼 하고 사회로 진출했을 때에도 우리는 학교에서 학습한 방법대로 정답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정답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어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게 정답인가? 늘린다면 얼마나 늘려야 하는가? 아니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정답인가?

살면 살수록 답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찾으려는 심리적 압박이 커진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정답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풀었던 문제를 떠올린다.



자료 출처
2024년 6월 모의고사 물리학1 19번 문항

위의 문제를 보면 물체의 크기, 실의 질량, 마찰과 같은 제한 조건을 두면서 정답을 찾기 위한 문제를 제시한다. 학교 다닐 때 수없이 풀었던 문제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는다. 현실에서 정답을 찾기 위해 제한 조건을 두어 문제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 첫번째 시도가 ‘이분법적 사고‘이다. 예를 들면 정치에서 적군과 아군이라는 프레임 속에 모든 현안을 가두어 둔다. 프레임에 가둬진 문제는 풀기가 쉽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서 말하는 것이 정답이 된다.
두번째 시도는 ‘경제 논리로 획일화‘ 이다. 자본주의는 현대에 가장 강력한 논리이다.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일단 지지하고 본다. 환경과 개발의 문제가 대립했을 때, 개발하여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산을 갈아엎고 아파트를 짓는다. 다른 여러가지를 생각할 것 없이 돈이라는 큰 잣대를 들이대면, 정답이 뚜렷하게 보여진다.
정답이 안 보이는 문제에 2가지의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정답 찾기를 포기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회는 부정적이고, 퇴보한다. 이때 정답 찾기를 포기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압력에 의해서 일 수도 있고, 본인 스스로의 선택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정부의 금투세, 법인세, 종부세 인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포기한다. 이것은 현실에 급급하게 만들어 정책과 정치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는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정부 정책을 놓고 극단으로 대립하는 국힘당과 민주당을 보며 정치적 피로감에 시민들은 정치에 신물이 난다. 그 결과 시민들은 정치적 허무주의를 경험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삶에 다가온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에 대한 반응을 포기한다. 이 순간 철학이 필요할 때이다. 철학의 시작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우리의 생각에 의심을 심어두고 질문을 권유하는 책이 이진우 저자의 ‘의심의 철학’이다. 질문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어떤 정답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통해 생각의 문을 열어둘 뿐이다. 여기에 한 챕터마다 철학자 한명씩 등장하여 질문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때론 철학자와의 가상 대화를 통해 생각의 핵심을 찾도록 도와준다.

정답 찾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두 철학자가 있다. 첫번째로 소개할 철학자는 아렌트이다. 아렌트는 우리의 정치적 허무주의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렌트의 정치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서로 헐뜯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서 자유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예를 들면 지금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는 나의 생각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회용품 규제를 하자”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정치적 허무주의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는 정치는 우리가 선택할 자유를 뺏아간다.

두번째로 소개할 철학자는 마르크스이다. 먼저 마르크스의 말을 보자.

마르크스의 말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우리의 삶에 물질적 요소들이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소한으로 지급하여 경제적으로 압박을 한다면 노동자들은 돈을 버는 것에만 신경을 쓸 것이고, 그 외의 다른 현안(노동 복지)들은 고용주의 뜻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을 더 들여다보면, 하부 구조(생산력과 생산 관계)가 상부 구조(이념-자본주의)에 앞선다. 하부 구조에서 생산력이 증가하면, 생산 관계에서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갈등이 생긴다. 이러한 갈등은 상부 구조에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유지하고 싶은 정부는 하부 구조가 붕괴하지 않도록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갈등을 잘 조절해야 한다.

정답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렌트는 개인적 노력을, 마르크스는 정부의 노력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분법적 사고’를 타파하기 위한 또 다른 방안을 제시해야 할까? ‘경제 논리로 획일화’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인생의 문제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는가?’이다.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가지 문제에는 사실 정답이 없다. 인생의 문제는 시험지에 주어진 문제의 상황과는 질과 양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그렇기에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질 것 인지가 중요하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선택에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리고 여러가지 문제 중에 어떤 것을 먼저 고민할 지 우선 순위를 매긴 후 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봐야 한다. 아래와 같은 문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