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미.알.못 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책
책 정보
박혜성 저, 글담, 2018년
추억으로 현재를 살아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육아에 힘들 때 와이프랑 신혼 때 이야기를 자주한다. 역시나 신혼여행이 대화의 주제로 자주 오르내린다. 특히 프랑스 남부에 갔을때가 아쉬움이 남는다. 예술가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정작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많은 것을 느끼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미술에 대해 책 한 권 읽어봐야지 했는데 지금이 좋은 때 인 것 같아 바로 미술책 한 권을 읽었다.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에게 접근성이 높은 책을 고르고 골라 한권을 들었다.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는 여러가지 테마별로 묶어서 작품과 함께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소주제에 글 내용이 많지 않고, 그림이 중간에 크게 들어가다보니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없고, 긴 글에 익숙치 않은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구성으로 만든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에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미술 작품 하나를 디테일하게 소개를 해서 독자들에게 작품을 이해하는 눈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작품과 관련된 간단한 일화나 작품의 핵심 내용을 간단히 언급함으로써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게끔 유도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챕터에서는 고갱의 작품을 소개한다. 고갱이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고 그 이유로 와이프와 이혼을 한 후 타이티섬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장녀의 죽음을 알게되고, 이런 슬픔을 그림에 담아 완성한 작품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였다.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오른쪽의 아기는 탄생기, 중간은 선악과를 따는 장년기, 그리고 왼쪽은 노년기입니다. 뒷편의 푸른 동상은 타히티의 죽음의신 ‘히나’의 동상으로, 동상을 등지고 두 손을 모은 여인은 죽은 딸 알린입니다. 오른쪽의 검은 개는 고갱 자신이고요.’ -p166-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해석하데 도움이 되는 기초적인 내용만 간단히 언급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림을 보는 방법에 대해 가이드는 해주지만, 자세한 감상과 느낌은 스스로가 느낄 수 있도록 여백을 주는 듯하다. 서울에서 고갱전이 있을 때 실제로 위에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땐 저 작품의 크기에 먼저 압도를 당했다. 그리고 그림을 조금이라도 이해보려고 그 앞에서 10분넘게 찬찬히 구석구석 살펴 보았다. 그땐 유화의 터치, 색감, 이국적 풍경과 같은 그림에서만 보이는 것들 위주로 보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그림 속에 있는 것들도 같이 보인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저자는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특히 작가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작품은 작가의 내면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쿠사마 야요이, 쿠사마 야요이와 호박]
쿠사마 야요이 작가는 어린시절 격었던 아픔 때문인지 강박신경증과 공황장애를 겪었으며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여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어릴 적 상처를 극복하기 내면에서 많은 폭풍이 몰아쳤을 것 같다. 이러한 결과가 몽환적이고 기존의 것에 벗어나 있는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법정 마음의 온도라는 책에 ‘있는 그대로 살면서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자신의 빛깔과 품위를 지닌 온전한 사람이다.’ 문장이 나온다. 쿠사마 야요이도 상처 받았던 과거의 모습은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색깔을 찾으면서 거장으로 승화한 듯하다. 작가를 아는 것은 분명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바쁘고 힘들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우리는 분명 쉬어갈 필요가 있다. 평일에 못 잤던 잠을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미술 작품 하나를 보는 것도 필요하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짧은 시간의 쉼표가 어쩌면 인생의 방향을 찾을지 모른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물음의 답을 찾을수도 있다. 과거 고갱, 프리다칼로, 바스키아와 같은 많은 작가들이 미술에서 인생의 답을 찾았던 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