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선사의 지혜가 닮긴 책
책 정보
법정 저, 범우사, 1999년
고등학교 시절 국어 비문학 지문으로 ‘무소유’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당시에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인데 아이러니하게 무소유를 이야기하시니 조금 특별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나이가 들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무소유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우리집에는 TV가 없다. 신혼부터 TV를 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TV가 없는 우리집은 항상 이야기가 끊임없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 아이들의 하루, 이것 저것 물어볼 것도 많고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나중엔 소음으로 치닫지만 무소유가 주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책은 법정스님의 일상에서 생각하고 느낀것을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정스님이 얼마나 오래전 사람인지 느끼게 된다. 한 예로 서울에서 경주로 가면서 소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 때 고속버스비가 1300원이며, 버스 안내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땐 세월의 격차를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 스님의 오래전 통찰이 지금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이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부분에서 생각이 이어지게 되었다.
나는 학교에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라고 일컬어 지는 아이들은 눈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문제아들은 학교 안 밖에서 사고를 많이 쳤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의 배경을 보면 딱한 사정도 많이 있었다. 한부모 가정, 재혼 가정, 조손 가정, 가정 불화 등등 집에서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떻게든 관심을 받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공부나 학교생활을 잘 해서 관심을 받으면 이상적이지만, 그러기엔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짐이 무거웠다. 결국 다른 방법을 택해서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부정적 관심이라도 끌어보려는 아이들의 선택에 안타깝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먼저 나간다. 행여나 나의 몸과 마음이 물에 젖었다가 마른 종이처럼 부풀고 뻣뻣한 상태라면 아이들에게 짜증까지 내며 감정의 배출구로 이용하기도 했었다.
‘바닷가의 조약돌은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p.35-
이 한 문장이 나의 한 행동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점을 알려주어 바로 버릇을 잡겠다는 오만한 생각에 틈을 만들었다. 결국 모난 아이들을 예쁘게 만들 수 있는건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나의 시간과 노력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안된다면 다음 인연까지도 쓰다듬는 물결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모난 아이들이 둥글고 예쁜 조약돌로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촉법 소년’과 관련된 이슈가 쟁점인 적이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아이들이 예전 같지 않아 범죄의 죄질이 나쁘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 소년법을 폐지하자거나 적용되는 연령을 낮추자는 의견이 다수로 비추어진다. 언론에 나오는 아이들의 범죄는 어른의 범죄와 다를 바 없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아이’이다. 물론 내가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진 않았지만, 모나고 삐뚤어진 아이들에게 사회가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을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소년법 개정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물을 가열한다고 바로 끓는 것은 아니다. 물의 양이 많을수록 수증기로 상태 변화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처럼 아이들의 상태 변화를 원한다면 우린 오랫동안 끊임없이 따뜻하게 데워 주어야한다.
책을 읽다보면 법정스님의 ‘어린 왕자’ 책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책 중간에서도 어린 왕자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거나 책 챕터 하나를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부제를 붙여서 글을 쓴 부분도 있다. 법정스님은 ‘어린 왕자’를 읽고 어떻게 느꼈지를 사람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생각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말에 무엇을 하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사람은 시간의 소중함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다. 그래서 시간을 허투로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에서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다.’라는 명언이 있지 않는가. 거꾸로 이야기하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자신의 시간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요즘 어디에 시간을 쓰는지 살펴보니, 웹툰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었다. 허허.. 아이들처럼 말이다. 나한테 만화를 보는 이 순간이 자유분방한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이였다. 어쩌면 지금도 마음 한켠에는 웹툰 작가나 판타지 소설 작가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날씨가 좋다. 이처럼 좋은날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잠깐 뒤로 넘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바쁘고 살기 힘든 시기일 수록 하늘도 한번 쳐다보고, 나무 그늘에서 옛 선사의 지혜가 담겨 있는 책 한 권을 읽는다면 마음 또한 넓어질 것 같다.